오늘날 우리는 생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술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의 취향에 맞게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영화나 동영상을 비롯한 미디어 콘텐츠들을 보고, 자율주행 기능과 고성능 네비게이션 기능을 탑재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휴대폰이나 TV를 비롯한 각종 가전기기들을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고 이용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챗봇 서비스나 학습센터도 찾아볼 수 있다.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 깊숙하게 들어온 인공지능의 역사는 1950년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그는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논문에서 기계와 대화를 나누고, 여기서 기계의 답변과 반응이 인간의 것과 구별할 수 없다면, 해당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사고기계를 제안하여 인공지능의 개념을 제시하였다.1) 1956년 존 매카시, 앨런 뉴얼, 마빈 민스키, 아서 사무엘 등이 참여한 다트머스 컨퍼런스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며 이후 인공지능 연구 방향 정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2) 이러한 상황 속에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인공지능 구현에 필요한 기본적인 수학적 기법들과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개발되고, 엘리자(ELIZA), MYCIN 등의 초기 인공지능 시스템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프로그래밍과 하드웨어적 처리 능력의 한계로 인한 실제 인공지능을 구현에 한계가 노출되면서 관련 국가 연구기관들이 해체되거나 지원을 중단하고, 한동안 인공지능은 암흑기에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1980년대 신경망(neural net) 이론이 등장하고, 컴퓨팅 능력의 향상과 인터넷,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대용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시금 인공지능이 부활하게 된다. 1997년 IBM의 체스 프로그램 딥 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기고, 2011년 IBM의 왓슨(Watson)이 TV 퀴즈쇼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인공지능의 가능성이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딥 러닝을 비롯한 고도화된 기계학습 방법들이 발전하고, 음성이나 영상 인식, 자연어 처리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처리와 대용량 데이터의 빠른 처리 기술들이 지속하여 등장하면서 인공지능은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나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또는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는 단어들을 흔히 접하고 있다. 엄밀하게는 각각의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지만, 우리는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머신 러닝’과 ‘딥 러닝’을 포괄하는 가장 넓은 개념으로,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도록 하는 모든 기술을 포함한다. 이는 언어 이해, 문제 해결, 학습, 인식, 추론 등을 포함하며, 더 큰 맥락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들 중 하나가 ‘머신 러닝’이다.
머신 러닝은 사람의 프로그래밍을 필요로 하지 않고, 대량의 데이터가 주어지면 이를 컴퓨터가 스스로 해석하고 규칙을 이끌어내는 기술이다. 머신 러닝에서는 데이터와 이 데이터로 도출되는 결과물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컴퓨터는 입력된 데이터들을 처리하여 그 속에서 규칙을 알아서 도출해낸다. 이렇게 컴퓨터가 도출한 규칙을 바탕으로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거나 또 다른 데이터들에서 규칙을 찾아내 분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검색 엔진들과 콘텐츠 추천 서비스와 같은 기술들이 이런 머신 러닝을 활용한다.
이런 머신 러닝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우리는 사용하고 있다. 이 중 인간의 뇌가 ‘뉴런’이라는 신경망을 활용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모방하여, 인간의 신경망 구조(neural networks)와 유사하게 여러 단계로 인공 신경망을 구축하여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하는 기술이 ‘딥 러닝’이다. 딥 러닝은 복잡한 패턴을 인식하는 데 매우 유용하며, 대용량 데이터에서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달성할 수 있고, 이미지 및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 등에서 널리 사용된다(Table 1, Figure 1).
Comparison of artificial intelligence, machine learning, and deep learning
Item | Artificial intelligence | Machine learning | Deep learning |
---|---|---|---|
Definition | Any technology that mimics human intelligence | Any technology that computers learn automatically | A branch of machine learning that uses artificial neural networks to learn complex patterns |
Scope | The widest range of technologies | A branch of artificial intelligence | A branch of machine learning |
Core value | Creating systems with the ability to solve problems, learn, recognize, reason, etc. | Algorithms and techniques to learn from data and find patterns | Use artificial neural networks to recognize and learn complex patterns |
Examples | Systems that pass the Turing test, chess players, etc. | Spam filters, recommendation systems, weather prediction models, etc. | Image recognition, speech recognition, natural language processing, etc. |
한편 인공지능은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한 학습을 수행하는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강화학습이란 컴퓨터가 특정 조건에서 보상이 최대가 되도록 행동하게 학습하는 방법이다. 컴퓨터는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하여 행동을 취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 또는 패널티를 받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가장 많은 보상을 얻는 행동을 학습하게 되는데, 알파고(AlphaGo, DeepMind Technologies Limited, London, UK)와 같은 시스템에서 이 방법이 사용되었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형태의 기기나 기술들과 결합하고,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가지고 있다. 의료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3-6)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다양한 영상들을 분석하고, 영상에서 목표로 하는 특정 소견을 발견하거나 정량적으로 계측할 수 있으며, 질병의 진단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컴퓨터를 활용한 검출 및 진단 보조(computer-aided detection/diagnosis) 기술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이미지에서 폐나 심장, 뇌혈관에서 발생한 다양한 병변을 식별하거나 암과 같은 질병을 예측해준다. 최근에는 위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 초음파 영상들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이상 소견을 검출하거나, 소견 관찰에 유리한 뷰(view)를 안내해주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환자의 다양한 생체 신호를 비롯한 건강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이나 질병을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 대표적인 인공지능 의료기기 회사 VUNO의 DeepCARS 제품은 환자의 활력징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분석하여 24시간 이내 심정지 발생 위험도를 제공한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과정에는 5,000–1만여 개의 후보물질들 가운데 전임상시험 물질을 선별하고, 3상 임상시험까지 수행하여 최종 신약을 개발하는 하는 데 15년 정도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약개발을 위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여기에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정보를 탐색하고 약물 설계를 수행하게 되면 이런 후보물질 선정과 신약 개발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이 인공지능 신기술에 투자하고 있다.7)
인공지능은 환자의 다양한 병력 데이터뿐만 유전적 정보, 생활 습관, 의료 기록 등을 분석하여 개인화된 치료 계획을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공지능은 의료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국내에도 이러한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기기들이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2022년 의료기기 허가 보고서’8)에 따르면 2018년 5월 VUNO의 골연령 측정 보조 소프트웨어 VUNO Med®-BoneAge를 시작으로, 2022년 12월까지 총 149개 품목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들의 인허가가 이루어졌다. 그 내용을 볼 때, 초기에는 폐 병변 위주 영상판독보조 소프트웨어가 중심을 이루었지만, 점점 그 분야가 넓어지며 관상동맥 석회화 점수 진단이나 뇌출혈, 뇌동맥류 병변의 진단과 같은 심뇌혈관 질환의 진단보조, 치매조기진단, 실시간 내시경 내 용종 분석과 진단, 전립선암 영상 기반 진단과 같은 다양한 질병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기들이 활발하게 등장하고 있다.
국내외 인허가를 획득한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영상의학과와 같은 특정 전문과를 대상으로 하거나, 병원 내 시스템들의 디지털화가 체계적으로 구축된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기기들이 적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들로는 일반 병의원급에서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를 활용하기에는 아직까지 제한적인 상황이다.
일차의료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건강 관리로, 증상의 초기 발견부터 치료, 장기 관리뿐만 아니라 예방까지 담당한다.9) 따라서 일차의료는 대국민 건강 관리 체계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되며 다음과 같은 진료 성격을 지닌다.10,11)
접근성: 일차의료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초기 단계로,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때에 적절한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전반적인 관리 및 조정: 일차의료 제공자는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전문가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예방적 관리: 일차의료는 예방적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생활습관 조언, 예방접종, 정기검진 등을 포함한다.
연속성: 일차의료 제공자는 개인의 건강 상태를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므로, 그들의 건강 이력과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다.
이러한 성격의 일차의료 진료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다음과 같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영상을 비롯한 각종 검사 데이터와 환자의 병력 데이터를 분석하면, 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환자의 처치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12)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협진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차의료 환경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비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흉부 X-선 영상 판독 시 폐렴이나 폐결절, 기흉과 같은 소견의 검출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됨이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의사는 항생제를 비롯한 처방 약물들을 결정하고 환자의 입원여부나 상급병원으로 의뢰를 결정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저영상을 분석하여 당뇨망막병증 선별검사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을 받고 있는 Digital Diagnostics사 IDx-DR 제품의 미국에서의 사례처럼 일차의료 진료의 환자군에서 암이나 만성질환 합병증과 같은 특정 환자군에 대한 선별검사로도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의 활용이 가능하다.13) 국내에서도 저선량 폐 computed tomography (CT)를 이용한 폐암검진이나 유방촬영술을 활용한 유방암검진에서 이미 인공지능 기반 영상판독보조 소프트웨어들이 많은 검진기관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보조를 받아 환자를 평가하여 추가검사자를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전자의무기록 내 다양한 검사 결과를 비롯한 환자의 병력 데이터를 취합한 정리한 결과들을 의료진에게 제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웨어러블 기기를 비롯한 다양한 경로로 환자가 직접 측정하는 건강 정보의 모니터링도 가능하며, 오랜 기간동안 연속적으로 수집한 정보들을 인공지능을 통해 빠르게 분석하여 질병이나 이상 상태에 대한 진단이나 예측을 수행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플랫폼의 결합으로 병원 바깥에서도 24시간 365일 연속적인 케어를 구현할 수 있으며, 의료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 환자의 초기 진단 과정을 지원하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안내하며, 필요한 경우 전문가와의 연결을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일차 의료 제공자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더욱 원활에게 하고, 환자들 또한 손쉽게 일차의료를 이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 대유행 기간 동안 영국은 Babylon Health의 가상 의사 서비스를 사전 진료에 활용하여, 환자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의료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시도하였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명이 넘는 사용자의 Ada HEALTH 앱은 사용자가 증상을 입력하면, 이를 분석하여 가능성이 높은 질병명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초기 진단을 받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게 상담을 요청할 수 있다.
이렇게 인공지능 기술과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을 결합하면 병원 바깥에서도 지속적인 환자 케어 및 교육이 가능하다. 클라우드 및 정보통신망 발전, 스마트/웨어러블 기기 보급 확대에 힘입어 진료실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기록되는 환자 건강 정보의 수집이 자유로워지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빠른 분석과 예측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병원 바깥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의료진으로부터 피드백이나 교육 제공이 가능해진다.14)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환자의 건강 데이터와 의료 기록을 분석하여 개인화된 치료 계획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입력 정보를 취급하고, 대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장점을 활용하면 병원에서의 진료 기록뿐만 운동량, 식이, 수면과 같이 일상 생활 속에서 웨어러블 기기나 핸드폰을 통해 입력되는 환자별 건강 데이터 및 각종 생체 측정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건강 예측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개별화된 건강관리 계획을 수립하거나 만성질환과 같은 질병상태 관리가 가능하며, 환자별 상황에 따른 적절한 교육 제공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Noom과 같은 인공지능을 기반의 건강관리 앱을 활용하여 환자의 혈압, 혈당, 심박수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개인에게 최적화된 의약품 복용 스케줄, 식단 및 운동 계획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환자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자신의 건강 데이터와 생활 습관 정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에 따른 치료 효과 평가와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자기 관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을 가진 환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건강관리 앱을 활용하여 자신의 혈당과 운동, 체중 및 투약 상황을 점검할 수 있고, 자신이 입력한 혈당 수준, 활동량, 식단 데이터와 같은 정보들을 인공지능이 분석하여 적절한 식사 계획과 운동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필요한 정보를 추천할 수 있다. 특히 최근 OpenAI의 ChatGPT나 구글의 Bard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환자들 스스로 증상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장벽이 더욱 낮아지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대용량의 자료와 다양한 형태로 입력되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분석할 수 있다. 진료 과정 속에서 의료진에게 큰 부담이 되는 의무기록 작성을 음성이나 이미지 인식으로 처리하여, 의무기록 작성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형태로 연속적으로 수집되는 환자의 정보들을 자동으로 정리, 분석하고 의사들에게 제공하여 의사 진료를 보조하고,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건강기록 업체와 함께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전자건강기록 플랫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도 의원급이나 병원급 대상 전자의무기록 플랫폼 업체들이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시스템을 활용하여 건강자료 수집 및 분석, 활용도를 높이는 서비스를 활발히 출시하고 있다.
상기 예들은 인공지능이 일차의료 진료에서 환자 관리를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개인화된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차의료 진료 영역에 인공지능의 도입은 많은 도움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음의 부분들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의 특성상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기기의 도입에 앞서 체계적인 임상검증이 요구된다. 실제 임상은 매우 다양한 상황들과 마주하게 되며, 이러한 상황들마다 인공지능 의료기기는 그 성능과 안전성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증상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상태의 환자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일차의료 진료의 특성상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안정적인 성능 재현은 매우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과 의료기기들의 의학적 진단과 예측 성능을 다루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었지만, 실제 임상 현장의 실사용데이터(real world data)에 기반한 전향적 연구나 무작위 대조군 연구(random controlled trial)는 극히 드물다. 이로 인해 기존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들의 체계적인 임상검증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15,16)
또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들에 대한 기기 성능이 현실 임상현장보다 과장된 성능을 보이는 ‘과적합(overfitting)’과 학습 데이터에 활용한 데이터들의 특성이 실제 기기가 적용되는 임상 현장의 특성이나 대상자들 구성과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펙트럼 바이어스(spectrum bias)’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정확도와 일반화 가능성을 크게 과장할 수가 있다. 실제로 전 세계 COVID-19 대유행으로 COVID-19를 진단하기 위해 흉부 CT나 X-ray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들이 많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400개가 넘는 이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검토해보니, 거의 모든 제품들이 임상적으로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는 결과는 이런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의 임상적용과 활용에 주의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17)
딥 러닝 방식의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흔히 ‘블랙박스(black box)’라고 하는 비판이 존재한다. 이는 인공지능이 주어진 데이터를 내부적으로 처리하고 결과를 제시하기까지 어떤 과정과 사고가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불명확성을 지적하는 것이다.18)
일반적으로 질병이 발생하기까지 다양한 원인들이 작용하고, 이러한 위험요인들의 지속적인 노출과 지속적인 상호 작용을 거치면서 질병이나 이상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환자의 진료 과정에서 의사는 이러한 원인과 경과를 파악하는 것이 추가 검사나 처치 방법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이러한 결과 도출 과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인공지능 기술의 블랙박스 특성은 환자 진료에서 처치 전략 수립에 어려움이 될 수 있다.
질병 진단 보조나 관심이 되는 상태의 검출력을 높이기 위해 영상이나 시료 및 검체 분석 등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의 검진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보조 진단이나 검출을 위한 의료기기를 활용하면, 질병 진단이나 검출 민감도(sensitivity)가 높아지지만, 한편으로는 정상이거나 목표 소견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양성으로 분류하는 위양성(false positive) 사례도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 이런 위양성 결과는 추가 검사나 처치로 이어지기 때문에 해당 수검자에게 불필요한 의료 행위로 인한 위험성과 경제적/시간적 부담을 유발할 수 있다. 한편, 의료기기의 검출력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 소견이 있는 경우를 감별하지 못하고 정상으로 판단하는 위음성(false negative) 결과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위음성 사례는 질병의 진단을 늦추어서 이로 인한 질병 진행으로 인해 치료와 예후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진 상황에서는 목표로 하는 질병이나 이상 소견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양성 사례를 감수하더라도 목표 소견이나 질병에 대한 진단 민감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가능하면 위음성 발생은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의료진은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에 따라 수검자가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위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결과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공지능 기반 제품을 개발 과정에서 정확한 성능을 위해 양질의 학습 데이터를 대용량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편향된 경우, 인공지능은 잘못되거나 편향된 학습을 하게 되고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 인공지능을 활용한 피부암 선별검사 앱을 개발할 때 백인 위주로 구성된 학습 데이터를 사용하면서 실제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에서는 피부암 의심 소견이 과소 진단되는 경향을 보였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19)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진료 환경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기 위한 디지털화된 병원 환경 구축이 요구된다. 다양한 검사, 영상촬영, 생체 신호 모니터링 데이터를 수집하고, 디지털화하여 저장할 수 있는 기기들의 도입, 이렇게 디지털화된 정보를 취급하고 인공지능 의료기기와 연동이 가능한 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electronic medical record와 같은 의료정보시스템 구축, 여기에 추가로 의료 정보 저장과 연계를 위한 별도 서버나 클라우드 시스템 도입과 같이 다양한 시설과 장비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의료 서비스는 대용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이 이뤄지고, 실제 이용과정에서 환자의 의료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데이터 보안 문제가 중요하다. 특히 의료 정보는 질병 정보 등 여러 민감정보를 포함하고 있어서 이런 정보가 부적절하게 공유되거나 사용되는 경우 환자의 개인정보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보안이 요구된다. 상대적으로 인력, 시설 등의 자원이 부족한 일차의료 환경에서 이러한 디지털화된 진료환경 구성은 인공지능 기술 활용에 장벽이 될 수 있다.
많은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들이 대형 의료기관이나 영상의학과와 같은 전문과를 대상으로 개발이 되었다. 일차의료인으로 증상 자체도 명확히 분류되지 않는 상태의 환자들과 접촉해야 하는 진료환경에서 마주치는 경우와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대상으로 하는 대상집단과 그 성격이 다를 수 있게 되며, 이는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성능과 신뢰도에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으며, 의료 분야에서는 특히 그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외적 확대에 비해 실제 의료기관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은 아직 시작단계에 머물러 있다. 인공지능 의료기기를 활용한 의료행위들의 급여화 문제,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를 활용하기 위한 병원 환경 투자비용 등은 일차의료기관에서의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 적용에 장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에 대한 적극적인 국가적 지원과 국내 업체들의 약진, 대용량 정보통신 기술과 클라우드 서비스의 확대, 그리고 인공지능 기반 기기에 대한 사용 경험과 이해도의 증가는 일차의료 영역에서 더욱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의 적용을 확대해 갈 것이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하여 물리적/시간적 장벽이 허물어지는 이제, 내 앞의 환자뿐만 아니라, 병원 밖에서 생활하는 환자들까지 케어하며, 효과적인 일차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인으로서 인공지능이라는 훌륭한 보조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본 저자는 2022년 7월까지 인공지능 기반 영상판독보조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기업 Lunit Inc.에서 근무하였지만, 본 원고 작성과 관련하여 어떠한 대가나 도움을 제공받지 않았습니다.